워터밤 남신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 백호 <RUSH>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중심에 둔 아티스트 중심의 컨셉 디자인에 대하여



힘을 뺀 디자인,
그게 오히려 이 업계에선 정답이더라고요.


‘팬들이 보고 싶은 건 원본에 가까운 사진 아닐까?’
‘디자인 보다 아티스트가 더 돋보였으면 좋겠다.’

최근 워터밤 남신으로 소셜미디어를 휩쓴 아티스트 백호.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 ‘BAEKHO : RUSH MODE’의 일환으로, 생일 전날 스페셜 파티가 열렸어요. 약 2년 만에 국내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기에 더없이 특별한 시간이었죠.

이번 프로젝트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역시 눈길을 끌었는데요, 강렬한 분위기를 더한 로고 디자인은 스프레드웍스 전준희 디자이너의 작업이었어요. ‘상남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백호와 찰떡처럼 어울리는 레드와 블랙의 잔상이 아티스트의 에너지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요.

디자인 그 자체보다, 아티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사례였죠.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야 할 건 결국 아티스트라는 점, 그 단순한 원칙이 이번 디자인의 핵심이었어요. 과거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꿈꿨다는 준희 님은 어떻게 아티스트가 돋보이는 디자인을 했을까요? 로고 시안 작업부터 스페셜 파티 비하인드를 들어보았습니다.





역설적인 표현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일






전준희 디자이너(이하 준희): 엔터테인먼트 업계 자체가 그래픽보다 아티스트가 훨씬 중요한 영역이다 보니까, 디자인이 돋보이기보단 아티스트를 빛나게 해주는 쪽이 맞겠더라고요. ‘디자인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프로젝트가 공개됐을 때, 팬들은 화려한 그래픽보다 원본에 가까운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더 반가워하겠구나 싶었어요.

Q. 대중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텐데요.

준희: 처음 기획안을 받았을 때 ‘Primal Grace(원초적 우아함)’라는 워딩이 있었는데, 이걸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꽤 오래 고민했어요. 특히 클라이언트 쪽에서 계속 강조하셨던 건 “예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었어요. 백호가 가진 강하고 단단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은 피하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팬이 아닌 일반 대중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봤어요. 엔터 업계가 어느 정도 실험성과 난해함을 허용하긴 하지만, 대중은 그걸 '어렵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돌아가지 말고, 곡에 대한 표현이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읽히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Q. ‘Primal Grace’라는 말 자체가 좀 낯설잖아요.

준희: 맞아요. ‘Primal Grace’ 자체가 워낙 상충되고 역설적인 표현이다 보니까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가 고민이 많았어요. 클라이언트 문서에 적힌 워딩을 보면서 떠올렸던 이미지는, 예를 들면 박재범 같은 남자 연예인? 그 정도를 생각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태양이나, 예전엔 비 같은 이미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나이가 좀 나오네요. (웃음)

결국 아이돌이라기보다, ‘가수’로서의 무게감이 있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백호가 대중에게 자칫 섹시한 이미지로만 그려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화시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Primal Grace’라는 키워드를 그대로 디자인에 녹이기보단, 곡의 분위기나 감정선에 맞춰 표현하는 게 더 낫겠다싶더라고요.

Q. 실제 시안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요?

준희: 가장 고민이 컸던 건, ‘RUSH’라는 단어의 에너지와 곡의 분위기, 그리고 백호라는 인물의 이미지까지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레터링 모티브를 어떻게 만들까였어요. 곡 자체는 EDM 장르에 오토튠이 강하게 들어가 있어서 약간 SF스러운, 미래적인 무드가 있었어요. 반대로 컨셉 포토는 조금 더 캐주얼하고 러프한 분위기였거든요. 그 두 이미지를 어떻게 하나의 시각 언어로 풀어낼지, 간극을 자연스럽게 잇는 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어요.

Q. 그 간극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어내셨어요?

준희: ‘RUSH’라는 단어가 주는 속도감과 착시, 왜곡 같은 감각적인 요소들을 로고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싶었어요. 보는 순간 뭔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으면 했죠. 특히 ‘속도’가 가진 의미가 단순히 빠름을 넘어서, 잔상이나 시각적 착시로 인식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만화적인 갈필 느낌의 획을 그래픽 요소로 활용하고, 투시와 선을 이용해 시선의 흐름에 방향성과 속도감을 부여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디자인을 보는 순간 시각적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어요.



Q. 레드 컬러도 시선을 확 사로잡더라고요.

준희: 초기 시안에서는 블랙 레터링에 초록빛 아우라 같은 효과를 줬었어요. 그런데 다른 그래픽 작업들을 병행하면서 점점 ‘이건 레드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특히 속도감이나 강렬한 인상을 시각적으로 끌어내려면 계기판처럼 경고등이 들어온 듯한 느낌이 필요한데, 거기서 자연스럽게 빨간색이 떠올랐죠.

Q. 처음부터 레드가 메인 컬러였던 건 아니었군요.

준희: 사실 백호가 예전 앨범에서도 레드를 메인 컬러로 쓴 적이 있어서, ‘또 빨간색을 써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빨간색은 톤이나 무드 면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됐어요.

결정적으로 뮤직비디오 컷을 중간에 공유받았을 때,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이미 레드를 메인 컬러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생각이 잘 맞아떨어진 거죠. 다양한 컬러 시안을 내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레드가 가장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처음에 배치했던 레드 시안이 최종적으로 선택됐어요.

Q. 대중도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해 가장 신경 쓴 디테일이 있다면요?


준희: 저도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지만, 가끔 너무 난해하게 풀어낸 디자인은 팬들조차 외면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차별화’보다는 일단 직관적으로 이 곡이 어떤 분위기인지 전해지는 것에 더 초점을 뒀어요. 포스터를 본 사람들이 “아, 이런 느낌의 곡이구나” 하고 한눈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디자인의 완성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컨셉이 읽히도록 설계했어요.




Q. 대중도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해 가장 신경 쓴 디테일이 있다면요?


준희: 저도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지만, 가끔 너무 난해하게 풀어낸 디자인은 팬들조차 외면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차별화’보다는 일단 직관적으로 이 곡이 어떤 분위기인지 전해지는 것에 더 초점을 뒀어요. 포스터를 본 사람들이 “아, 이런 느낌의 곡이구나” 하고 한눈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디자인의 완성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컨셉이 읽히도록 설계했어요.

Q. 로고에서 의도한 무드가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준희: 사실 속도감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빠르다’는 개념 자체보다, 빠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잔상이나 착시 같은 시각적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하나씩 떠올려보면서, 실제 디자인에도 반영해봤어요.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F1 경기의 계기판이에요. 차가 고속으로 움직일 때 생기는 잔상의 느낌이 '진짜 빠르다'는 인상을 시각적으로 가장 직관적으로 주더라고요. 그래서 최종 시안에서는, 그 계기판 잔상에서 착안한 요소들을 레터링 안에 녹여 넣었어요.






디자인으로 나를 증명하는 방법



Q. 원래 엔터 업계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어요.

준희: 관심은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직접 해보니까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은 정말 빠르게 움직이는 산업이라는 걸 체감헀어요. 그래픽적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단시간에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 트렌디하고 임팩트까지 있어야 하니까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아, 진짜 많이 배워야겠구나’ 싶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Q.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준희: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된 것도 저 스스로 약간 내향적인 관종이라 그런 것 같아요. INFP라 앞에 나서는 건 쑥스러운데 또 어딘가선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있거든요. 디자인은 그런 점에서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작업물이 대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엔터 업계가 더 재밌게 느껴졌어요. 디자인이 정말 널리 퍼질 수 있는 영역이고, 반응도 바로바로 오는 업계잖아요. 막상 해보니까 ‘더 해보고 싶다, 다음에 더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Q. 욕심이 생기니까, 준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겠어요.


준희: 맞아요. 그래서 기간이 타이트했지만 프로젝트 초반에 산업 전반의 트렌드와 경쟁사 조사부터 시작했어요. 트렌드는 지금 시장에 맞는 디자인 전략을 세우는 기준이 되고, 경쟁사 조사는 현재 어떤 디자인 언어가 소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기준을 잡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팬과 대중이 백호라는 아티스트에게서 기대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X(구 트위터), 팬 커뮤니티, 음원 사이트, 유튜브 댓글처럼 대중의 반응이 드러나는 채널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사람들이 진짜 어떤 백호를 기대하고 있는지, 또 어떤 무드나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준비했죠.




Q.  그렇게 공들여 준비했더라도 클라이언트와의 어려움은 있었을 것 같아요.

준희: 우선은 클라이언트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고, 어떤 결과물을 원하고 있는지 먼저 충분히 듣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 안에서 허용 가능한 범위라면 최대한 반영하려고 해요. 다만 그 범위를 넘어선다고 느껴질 때는, 제가 생각하는 방향을 시각화해서 제안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서 풀어내는 편이에요.

보통 시안을 낼 때도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이나 A안은 앞쪽에 배치하고, 제가 제안하고 싶은 방향은 B안이나 뒤쪽에 넣는 식으로 구성해요. 한 쪽의 입장만 강하게 밀기보다는, 같이 고민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거죠. 다행히 이번에도 의도한 대로 A안이 채택되기도 했고요.

클라이언트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어요. 업로드 마감 직전까지 시안을 조율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바빴던 날이었는데, 마지막에 클라이언트 담당자분이 “늦게까지 감사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셨거든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게 꽤 오래 마음에 남아요. 비록 역할은 달라도 한 명의 아티스트를 위해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동지애 같은 게 생겼달까요? (웃음)






‘왜?’보다 ‘이게 맞지!’
엔터 업계에서 통하는 직관의 언어


Q. 준희 님은 백호 스페셜 파티도 다녀오셨다던데, 어땠어요?

준희: 사실 좀 놀랐어요. 스테이지 배경에 로고가 엄청 크게 박혀 있었거든요? 처음엔 ‘어, 이 정도로 커도 괜찮나?’ 싶었는데, 공연 내내 백호 뒤로 비춰지는 걸 보면서 되려 기분이 좋더라고요. 로고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처럼 쓰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그리고 얼터 시안 중 일부가 굿즈로 사용됐는데, 그것도 되게 뿌듯했어요.

심지어 나중엔 백호가 그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거든요. 사실 이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 안에 진행된 데다, 디자인 에셋도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아티스트가 로고를 정말 적극적으로 활용해주는 걸 보면서, ‘이 디자인이 진짜 살아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감정을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Q. 디자인이 살아 움직인다는 표현, 재밌는데요?


준희: 제가 학생일 땐 항상 ‘왜 이 디자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분명해야 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리를 기반으로 설득하는 방식이 익숙했죠. 근데 엔터 디자인은 좀 다르더라고요. 논리보다는 감정, 철학, 직관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세계랄까요.

때로는 “왜?”보다 “그냥, 이게 맞잖아”로 더 쉽게 납득되는 순간들이 있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균형을 잡아야 했던 작업이었어요.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디자인 그걸 처음으로 진짜 해봤던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준희: 원래 티저 이미지가 하루에 피드 2개씩 업로드될 계획이었는데, 인스타그램 3줄 배열이 깨지는 문제가 생긴 거예요. 결국 줄을 맞추기 위해 얼터 피드를 급하게 제작해 중간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죠. 디자인 퀄리티 자체보다도, 배열이나 타이밍처럼 플랫폼 특유의 제약을 조율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엔터 산업에서는 빠르게, 그리고 트렌디하고 임팩트 있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어요. 아,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Q. 마지막으로, 준희님에게 ‘브랜드를 만든다’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준희: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디자이너가 창조자가 되어 어떤 존재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결과물을 보면 늘 어딘가 부모의 마음처럼 애착을 갖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 정체성을 제 마음대로 정의할 수는 없죠.

클라이언트의 요청과 브랜드가 가진 성격을 잘 읽어내고,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마치 백지 상태의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잘 짜인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개성과 서사를 갖춘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운 거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되고, 스며들고, 결국 사랑받게 되는 순간에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